(역사산책) 장무상망(長母相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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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장무상망(長母相忘)

의령의소리 | 입력 2024-07-06 14:24 / 수정 2024-07-06 21:18 댓글0


어떤 상황에서도 오랫동안 잊지 않는 벗 한 둘은 있어야 

오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는 세한도 속 신의와 지조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보 제180호. 오른쪽에 장무상망 네 글자가 인장으로 새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국보 제180호. 오른쪽에 장무상망 네 글자가 인장으로 새겨져 있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는 제주 유배중에 그려진 걸작으로 먼저 중국 시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장무상망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서로 잊지 말자라는 뜻이다. 이 글귀는 세한도의 오른쪽 하단에 글씨가 아닌 인장으로 새겨진 것이다.

 

가장 어려울 때(제주도 유배중) 자기를 생각해 준 사랑하는 제자에게 추사는 세한도를 주면서 조용히 마음을 안으로 다스려 장무상망이라는 인장을 눌렀을 것이다. 때문에 세한도를 떠올려 볼 때마다 추사와 그의 제자 우선 이상적과 나눈 그 애절한 마음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살면서 오래도록 서로 잊지 말자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두 명은 있어야 인생을 결코 헛되이 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또 가장 많이 회자되는 세한이라는 글의 의미다. 논어의 자한편에 세한연후 지송백자후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라 하여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고 한 것처럼 이상적인 신의를 그림의 제목으로 정했다.

 

추사는 1840년 윤상도의 옥사에 연루되어 제주로 유배를 간다. 유배중인데도 제자인 이상적이 의리를 잊지 않고 두 번이나 연경에서 책을 구해주자 1844년 답례로 세한도를 그려준 것이다. 추사는 송백과 같은 선비의 지조와 유배중인 자신의 처지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발문을 통해 권세와 이익으로 합친자들은 권세와 이익이 다하면 시들해진다고 했는데 그대는 권세와 이익에서 초연하게 벗어났으니 사마천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추워진 후에야 송백이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는데 그대가 나를 대함에 귀양오기 전이나 후나 변함이 없으니 공자의 칭찬을 받을만 하지 않은가 라고 썼다.

 

이상적은 스승에게 연경에 가서 표구하여 옛 지기분들의 시문을 청하겠다고 한 뒤, 연경에서 문우들과 감상회를 가짐으로써 새한도는 우리보다 중욱에서 먼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추사의 세한도에 앞서 인간의 지조를 강조한 사례로는 후한의 광무제와 신하 송홍의 대화를 들 수 있다.

 

광무제가 과부인 누님을 재혼시킬 욕심에 신하인 송홍에게 혼사의 뜻을 내비치자 송홍이 조강지처 불하당 빈천지교 불가망이라고 한 것이다. 이는 어려움을 함께한 부인은 내쫓지 못하며 어려울 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 당태종은 권력이 없던 태자시절 자신을 옹호해준 소우에게 벼슬을 주면서 세찬 바람속에서 억센풀을 알게 되고 혼란한 세상에서 진실한 신하를 알게 된다는 시를 지어주기도 했다.

 

때문에 공자가 말한 신의를 바탕으로 한 세한은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군자와 소인의 진면목이 가려지고 충신과 간신을 구별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인용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감탄고토가 다반사지만 세한도에 담긴 이상적의 신의와 지조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새삼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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