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산책) 엉터리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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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엉터리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

의령의소리 | 입력 2024-07-24 05:42 / 수정 2024-07-24 14:33 댓글0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구형왕릉은(仇衡王陵). 1971년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에 있는 구형왕릉은(仇衡王陵). 1971년 사적 제214호로 지정되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한 역사비틀기 '다반사'

역사와  스토리텔링 구별하는 혜안 있어야

 

오늘날 지방자치단체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역사마저 윤색, 각색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야기를 곁들여 감성팔이를 하면서 없는 사실도 역사인 양 둔갑시키고 설령 사실이 있다 하더라도 비틀어 윤색시켜 전혀 다른 역사적인 사실로 둔갑시킨다. 엉터리로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는 역사를 모티브로 하는 스토리텔링 사업의 목적은 오직 관광객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에 맞춰져 있다. 역사서술의 원칙인 술이부작이나 춘추필법은 무시하기 일쑤다.

 

산청의 전()구형왕릉은 빈약한 소재를 역사적인 사실로 윤색한 대표적인 사례다. 전해오는 이야기를 사서에 실려 있다는 이유로 복원, 단장해 관심을 끌도록 한 것이다.

 

일부 사찰들이 고찰임을 강조하다 보니 원효, 의상, 자장 등을 창건주로 내세우고 있으나 사실과 거리가 먼 사찰만의 주장에 불과한 경우가 많은 것처럼 산청군도 이같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산청에 웬 구형왕릉이 존재할까. 누구나 고개를 갸우뚱할 수 밖에 없다. 가락국 마지막 왕인 구형왕은 신라 법흥왕 532년 이사부의 공격으로 항복하고 신라에 귀속됐다. 김유신의 증조부다.

 

산청의 돌무덤을 두고 석탑이냐 무덤이냐의 논쟁은 오늘날의 얘기가 아니라 처음 왕릉이라 카더라라고 서술한 동국여지승람이 단초를 제공했다.

 

이후 증보문헌비고에서 민간전승이라며 신라 왕릉이라고 서술하고 1798년에는 인근 왕산사라는 절의 사중기에 구형왕릉이 등장하고 1864년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왕산사는 구형왕의 수정궁터이며 무덤은 구형왕릉이라고 했다. 1842년 발간된 각간선생실기에 구형왕은 포항 기계현에 살았다고 나와 있다. 모두가 1천년 전의 이야기다. 불탑이 왕릉으로 변해가고 가야 구형왕릉으로 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산청군은 왜 가야에 얽매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것일까? 조금만 살펴봐도 설득력이 없는 유적이다. 구형왕릉과 같은 돌탑은 의성과 안동, 단양, 충주, 제천 등지의 방단형적 석탑에서 볼 수 있듯이 고려초기 돌을 쌓아 만든 불탑의 한 갈래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만들어진 역사의 흔적은 인물, 제도, 유적,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분야에서 덧칠이 되어 전해지고 있다. 목적은 개작, 윤색, 덧칠을 해야 나에게 좋고 득이 된다는 데 있다. 미화시킨 개인의 자서전을 높이 사지 않듯이 만들어진 역사는 한 때의 흔적으로 남을 뿐이다.

 

무주에 있는 신라와 백제의 경계라는 나제통문 역시 엉터리 역사다. 신라군과 백제군이 대치했다는 이야기는 1963년에 만들어진 관광용 스토리텔링이었다. 나제통문은 무주 33경을 설정하면서 입혀진 명칭이며 1925년 일제가 인근에 용화금광을 개발하면서 석모산의 기미니굴을 높이 3m, 길이 10m의 터널로 뚫었던 것이다. 나제통문 이야기는 1990년 교과서에서 삭제됐다.

 

창녕 우포늪 역시 거짓의 자연사를 무기로 내세운 사례다. 늪의 생성시기는 길어야 수천 년에 불과한데도 14천만년의 신비를 간직한 우포늪이라고 과대포장하고 있다. 지질학자들은 경상도의 형성을 1억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세계최고(最古)의 호수라 불리는 바이칼호수도 1억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우포늪이 14천만년 전에 형성된 것이라면 기네스감이며 세계가 놀랄 일이다. 지질학계의 침묵 속에 환경단체가 자연사를 왜곡한 결과다. 수천년 전의 신비를 가진 우포늪으로 표기하는 당당함을 통해 자연 늪의 중요성을 부각시켜야 한다.

 

또 밀양의 땀흘리는 비석으로 유명한 사명대사비 역시 날조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누가 봐도 기온차이에서 오는 결로현상을 두고 국가에 위난을 알리는 징조라며 사명대사의 영험과 신비를 덧칠하지만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주변 일대는 지형적인 영향으로 비석이나 시멘트벽, 가정집의 마루에 있는 다듬잇돌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결로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석공장의 다듬지 않은 돌도 결로로 인해 습기를 머금고 있다. 무슨 영험이며 국가의 위기상황을 예견하는 것인지 발상도 놀랍다. 위기를 조장하는 혹세무민이다.

 

우리의 문화재에 얽혀있는 이야기도 과장과 신비로 점철돼 있다. 삼국유사 역시 책 전체가 상징성으로 이야기를 풀고 있을 정도로 오늘날의 용어로 보면 스토리텔링의 원전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역사적 사료를 무시하고 전개되는 무리한 스토리텔링에 있다.

 

단재의 지적대로 위증을 구별하는 방법은 사람과 사실과 이치다. 당시의 사람 행적과 유적발굴과 자료에 입각해 이치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관광용 역사만들기는 해당 자치단체장의 치적에 불과하며 소요되는 예산은 낭비일 뿐이다.

 

, 관광지의 문화재나 볼거리를 안내판이나 표지판대로 받아들이고 감탄만 한다면 관광객 스스로 우매함을 인정하는 셈이다. 관광객도 유명 맛집의 구별만큼 현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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